2008년 07월 27일
Chicana without apology 중
Some might think that by getting college degrees and an academic job I have achieved some measure of success. But what have I gained if I cannot talk to the person I once was?......
I know that the word "oppression" has fallen out of fashion, and that many sholars will cease to listen as soon as they hear it. Nearly everyone (including me) has embraced the idea of complex and multiple positions from which we all negotiate out oppressor/oppressed identities. But almost every day I witness or experience the starkness and clarity with which I can still draw a line between oppressor and oppressed. (Edén Torres, 2003: p.74)
우리 글쓰기모임에는 멕시코쪽의 뿌리를 가진 친구들이(여성은 Chicana, 남성은 Chicano라 부르는데) 몇 명있고 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서 관련 내용을 좀 귀동냥하고 있다. 최근 함께 읽은 책은 Edén Torres가 쓴 [Chicana Without Apology].
운좋게 저자와 토론할 기회도 가졌다. 여성학과와 Chicana Studies의 교수이면서 소설도 쓰곤 하는 그의 글은 아카데믹한 글쓰기와 수필/소설 등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Chicana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는 없지만 미국 학계 내의 유색여성으로서, 외국인 아웃사이더로서, 그리고 노동자의 딸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가슴이 찡해 눈물을 흘린 구절도 많았다.
읽으면서 나의 글쓰기,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 회의도 많이 들었다. 어려운 학술용어로 가득한 글은 과연 누구와 소통하려는 것인가?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은 어떤 글인가?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것이다!)
어린 시절 미네소타 시골의 농장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이 멕시코 이민자 농부의 딸로 자랐지만, 지금 학교에서 잔디를 깎고 계신 멕시코계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것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낀다. (나중에 그 아저씨께 스페인어로 말을 건네고 조금 더 편해지긴 하지만) 그리고 묻는다. "학위를 받고 학자로서 직업을 얻었던들, 내가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위의 발췌문 앞부분의 간단 번역)
선생님과의 대화 중 특히 재미있었던 일화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하려고 출판사 편집자와 전화통화를 하던 때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어떤 스페인어 제목을 제안했는데, 편집자가, "Spanish is not an option(스페인어는 선택할 수 없어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Edén은 오, 바로 그걸 제목으로 하자! 고 했다든데 :) 결국엔 여러 안 중에 Chicana without apology라는 제목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이 제목도 마음에 들긴 한다). 미국에서 언어 사용의 정치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사진은 amazon.com에서 가져옴.
(오랜만에 공부얘기를 했더니 힘들구마-;;)
I know that the word "oppression" has fallen out of fashion, and that many sholars will cease to listen as soon as they hear it. Nearly everyone (including me) has embraced the idea of complex and multiple positions from which we all negotiate out oppressor/oppressed identities. But almost every day I witness or experience the starkness and clarity with which I can still draw a line between oppressor and oppressed. (Edén Torres, 2003: p.74)
우리 글쓰기모임에는 멕시코쪽의 뿌리를 가진 친구들이(여성은 Chicana, 남성은 Chicano라 부르는데) 몇 명있고 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서 관련 내용을 좀 귀동냥하고 있다. 최근 함께 읽은 책은 Edén Torres가 쓴 [Chicana Without Apology].
운좋게 저자와 토론할 기회도 가졌다. 여성학과와 Chicana Studies의 교수이면서 소설도 쓰곤 하는 그의 글은 아카데믹한 글쓰기와 수필/소설 등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Chicana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는 없지만 미국 학계 내의 유색여성으로서, 외국인 아웃사이더로서, 그리고 노동자의 딸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가슴이 찡해 눈물을 흘린 구절도 많았다.
읽으면서 나의 글쓰기,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 회의도 많이 들었다. 어려운 학술용어로 가득한 글은 과연 누구와 소통하려는 것인가?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은 어떤 글인가?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것이다!)
어린 시절 미네소타 시골의 농장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이 멕시코 이민자 농부의 딸로 자랐지만, 지금 학교에서 잔디를 깎고 계신 멕시코계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것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낀다. (나중에 그 아저씨께 스페인어로 말을 건네고 조금 더 편해지긴 하지만) 그리고 묻는다. "학위를 받고 학자로서 직업을 얻었던들, 내가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위의 발췌문 앞부분의 간단 번역)
선생님과의 대화 중 특히 재미있었던 일화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하려고 출판사 편집자와 전화통화를 하던 때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어떤 스페인어 제목을 제안했는데, 편집자가, "Spanish is not an option(스페인어는 선택할 수 없어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Edén은 오, 바로 그걸 제목으로 하자! 고 했다든데 :) 결국엔 여러 안 중에 Chicana without apology라는 제목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이 제목도 마음에 들긴 한다). 미국에서 언어 사용의 정치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오랜만에 공부얘기를 했더니 힘들구마-;;)
# by | 2008/07/27 04:3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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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것도 어느 정도 학계에 들어가야 할 수 있는 고민 ㅡ.ㅡ
도마뱀/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해- 지배적인 언어와 다른 글쓰기 말이지.. 읽기가 난해하더라도 그를 통해 새로운 실험과 의미를 제공하려는 글들은 여전히 훌륭하다고 생각. (예를 들면, 딕테). 근데 쉽게 쓸 수도 있는데 자기도 어렴풋이 알아서 자곤을 남발하는 경우가 문제.. (나인가? ㅋㅋ )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키는 위험, 사회적 통념과 타협할 위험들을 벗어나면서 그 맥락을 구체적으로 제공하고 그 안의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어렵지 않은 글을 쓴다면 참 좋을텐데.. (아 쓰다보니 역시 어려운 일이다.. ㅎㅎ)
도서관 언어의 문제 참 그렇구나.. 아시아언어가 자물쇠로 채워진 것은 포르노같은 거 검색할까봐? ㅋㅋㅋ 무섭군. 만약 프로그램을 아예 깔지 않은 거라면 너무 무관심들하셨던 것 같고 (포콜과 글로벌 얘기를 그리 하시면서들..). 과의 테크놀로지 담당자가 하나 정도씩 있는데, 내 생각엔 그 분한테 말하면 바꿔줄 것 같아. administer계정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 분 연락처를 모르면 과사무실에 얘기하면 전해줄 수도 있을 것 같고. 우리과도 컴터를 좀 개선해야할 때 그 분에게 연락하거든. 앞으로의 후배들을 위해 성공하길 빌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