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line

“A deadline is negative inspiration. Still, it's better than no inspiration at all.”

 Rita Mae Brown

by 보풀 | 2008/08/21 12:46 | 트랙백 | 덧글(6)

The march for our lives


Sept 2nd March For Our Lives: Money For Health Care And Housing Not For War!
Health care and housing should never be luxuries - not in the United States, not anywhere. Toward this end, the Poor People’s Economic Human Rights Campaign calls for you to join us as we fill the streets of St. Paul, Minnesota in a powerful, peaceful demonstration for the right to health care, housing and all economic human rights. We will march because as poverty, hunger, unemployment and homelessness grow throughout this country, political leaders from both major parties have abandoned us. We cannot afford to be silent. We cannot afford to be disappeared from the public eye and the political debates as our families suffer. This September we will bring together poor and homeless people of every race, background and age, students, social workers, union members, lawyers, religious leaders, artists and everyone who stands for social and economic justice. We will make our voices heard as we “March for Our Lives to demand “Money for Health Care and Housing, Not for War!”
http://www.economichumanrights.org/updates/M4OL_schedule.html

가야지.
+ 포스터 좋음. (이 비슷한 포스터를 소장하고 있음.)

by 보풀 | 2008/08/20 14:36 | 트랙백 | 덧글(0)

미네통카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롭다. 머리 속엔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로 쓸 수 없는 걸 보면 머리 속에 있는 게 뭔지 의심스럽구만.
그냥 머리에서 바로 문서로 복사되면 안 되겠니...
괴로워하다가, 목말라서 부엌에 물마시러 나갔다가,
불려놓은 도라지가 생각나서 오이송송 썰어넣고 고추장 넣고 팍팍 무치고,
다시 책상으로 오니 뭘 하고 있었는지 까먹었다는...
(암튼 나는 내일 아침이면 도라지 무침을 먹을 수 있다네~)

올 여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면, 단연 호수 가서 노닥거리기. 
미네소타는 다코타어로 "하늘색물"이라는 뜻이라는데, 그런 만큼 호수가 많다.
한가한 주말, 모래장난 물장난 하는 아기들 구경하기. 선탠하는 젊은이들(!) 구경하기. 호수욕도 좋다.
여름 다 가기 전에 함 더 갔다왔음 좋겠는데..
사진은 미네통카 레이크. 이름도 귀엽지 아니한가.

by 보풀 | 2008/08/12 13:09 | 일기 | 트랙백 | 덧글(7)

영화 세 편

8월엔 할 일이 많다. 7월에 아픈 핑계와 지도교수의 개인적 사정으로 많은 일들을 무척이나 미뤄놓았더니, 이제 일들의 회오리가 몰려온다--  아아 살려주셈. 
쉬는 시간 막간 포스팅으로, 그간 본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세 편을 짧게나마 적어 두련다. 
각기 다른 경로로 보게 된 세 영화지만, 모두 어른과 아이(or 청소년) 관계를 중심으로 하고, 이 소외된 두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그를 통해 성장하는 점을 다룬다는 면에서 통하는 듯. 

중앙역 (Central Station):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인데 알고보니 상도 많이 받은 영화더라. 편지대필업을 하는 도라와 한 고아 소년이 브라질을 횡단하게 된다. 할머니-소년이라는 관계 때문에 한국영화 '집으로'가 언뜻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집으로'의 할머니는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기만 한 다소 평면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편이라고 생각하는데(그래서 다소 익숙한 애절한 감정을 이끌어냈겠지만), 도라는 그런 스테레오타입이 아닌,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인물이다. '집으로'가 소년의 성장기에 더 초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도라의 성장이 더 크게 와닿는다. 처음에 도라에게 호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도라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영화가 빈곤과 황폐함 속에서 생기는 애증에 대해 잘 그렸기 때문인 듯 하다. 



트랜스 아메리카(TransAmerica): 지수씨의 홈피에서 추천작이길래 본 영화. 역시 로드무비지만, 성전환 수술을 앞둔 브리와 아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종류의 관계, 정체성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펠리시티 호프만의 연기가 듣던대로 훌륭하더라.   




Martian Child: 안 그래도 존쿠색을 좋아하는데 더 좋아하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영화. 앞의 영화들에 비해 부유한 존쿠색이 좀 마음에 걸리는 점은 있다. 정신적, 물질적 지원의 여유라는 것 무시하기힘드니. 아이를 입양하려면 경제력이 좀 되야 허락이 되는 미국사회에선(특히 싱글 남자인 경우는 더욱 그럴테다), 어쩔 수 없는 설정일수도. 앞의 두 영화처럼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키운다기보다는, 아이를 통해 어른들이 더 배우게 된다는 것,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by 보풀 | 2008/08/10 14:08 | 트랙백 | 덧글(0)

Chicana without apology 중

Some might think that by getting college degrees and an academic job I have achieved some measure of success. But what have I gained if I cannot talk to the person I once was?......
I know that the word "oppression" has fallen out of fashion, and that many sholars will cease to listen as soon as they hear it. Nearly everyone (including me) has embraced the idea of complex and multiple positions from which we all negotiate out oppressor/oppressed identities. But almost every day I witness or experience the starkness and clarity with which I can still draw a line between oppressor and oppressed. (Edén Torres, 2003: p.74)

우리 글쓰기모임에는 멕시코쪽의 뿌리를 가진 친구들이(여성은 Chicana, 남성은 Chicano라 부르는데) 몇 명있고 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서 관련 내용을 좀 귀동냥하고 있다. 최근 함께 읽은 책은 Edén Torres가 쓴 [Chicana Without Apology].

운좋게 저자와 토론할 기회도 가졌다. 여성학과와 Chicana Studies의 교수이면서 소설도 쓰곤 하는 그의 글은 아카데믹한 글쓰기와 수필/소설 등의 경계를 넘나든다.
나는 Chicana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는 없지만 미국 학계 내의 유색여성으로서, 외국인 아웃사이더로서, 그리고 노동자의 딸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 가슴이 찡해 눈물을 흘린 구절도 많았다. 

읽으면서 나의 글쓰기,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 회의도 많이 들었다. 어려운 학술용어로 가득한 글은 과연 누구와 소통하려는 것인가? 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은 어떤 글인가?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것이다!)

어린 시절 미네소타 시골의 농장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이 멕시코 이민자 농부의 딸로 자랐지만, 지금 학교에서 잔디를 깎고 계신 멕시코계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는 것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낀다. (나중에 그 아저씨께 스페인어로 말을 건네고 조금 더 편해지긴 하지만) 그리고 묻는다. "학위를 받고 학자로서 직업을 얻었던들, 내가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얻었단 말인가?" (위의 발췌문 앞부분의 간단 번역) 

선생님과의 대화 중 특히 재미있었던 일화는, 이 책의 제목을 정하려고 출판사 편집자와 전화통화를 하던 때에 대한 것이었다. 선생님이 어떤 스페인어 제목을 제안했는데, 편집자가, "Spanish is not an option(스페인어는 선택할 수 없어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Edén은 오, 바로 그걸 제목으로 하자! 고 했다든데 :) 결국엔 여러 안 중에 Chicana without apology라는 제목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이 제목도 마음에 들긴 한다). 미국에서 언어 사용의 정치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사진은 amazon.com에서 가져옴.

(오랜만에 공부얘기를 했더니 힘들구마-;;)

by 보풀 | 2008/07/27 04:3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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